STS란 무엇인가?
STS가 보통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을 의미하지만, 이것을 “과학 기술과 사회” 혹은 “과학 기술과 사회에 대한 학문”(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tudies)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STS란 단어 자체의 기원으로 보면 청교도주의와 실험과학의 관계를 주장한 머튼(Robert Merton)의 논문 “17세기 영국의 과학 기술과 사회(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in 17th-Century England” (1938)가 널리 읽히고 인용되면서 ‘과학 기술과 사회’라는 단어가 일상적인 단어가되었고 이로부터 STS라는 약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머튼의 논문의 성격에서도 드러나지만, 지금 STS를 “과학 기술과 사회에 대한 학문”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사회”(Society)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1980년대 이전의 과학기술운동으로부터 과학기술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발전시킨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최근에 과학철학, 과학사, 과학사회학, 인류학, 여성학, 기술철학 등 과학기술에 대한 여러 학문분야들 사이의 학제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이러한 학제간 협동이 하나의 학과나 프로그램으로 모이는 경우도 생기면서 STS는 ‘과학기술학’의 의미로 더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STS는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과학정책학 등 과학에 대한 인문사회과학적 접근방법을 사용하는 학제간 연구의 총체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홍성욱, 「과학사와 과학기술학(STS), 그 접점들에 대한 분석」, 『한국과학사학회지』 제27권 제2호 (2005), 131-153쪽에서 인용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세르지오 시스몬도(Sergio Sismondo)에 의하면,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기술을 폴리테크닉(polytechnic)과 모노테크닉(monotechnic)으로 구분하였다. 폴리테크닉은 단순한 기술로서 삶과 연관된 인간적 요소와 결합하여 작동한다. 예를 들면 대장장이가 두드리는 망치는 대장장이의 삶과 연계된 연장으로 비교적 조야하지만 다예한 기구를 만들어낸다. 그에 반해 모노테크닉은 단순하지만 크게 힘을 증폭시키는 이른바 메가머신(megamachines)을 만든다. 메가머신의 특징은 비인간화(dehumanization)이다. 대표적 사례는 포디즘(Fordism)의 패러다임 하에서 운용되는 대형공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공장은 한 명의 대장장이와 비교할 수 없는 힘으로, 엄청난 양의 물건을 정밀하고 우수한 품질로 생산해 낸다. 그러나 종종 비인간화와 엄격한 규율화라는 댓가가 따르기도 한다. 멈포드는 우리의 사회가 그 자체 메가머신이 되는것을 경고하였다.
스티브 풀러(Steve Fuller)는 이러한 전통 하에서 기존의 STS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하나는 고담준론을 펼치는 ‘고층 종파(high church)’로서 이들은 주로 대학에서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들의 작업은 과학기술과 사회에 대한 인식론적, 역사학적, 사회학적, 인류학적 접근을 통한 이론적 해석이 주를 이룬다. 대표적인 예로는 로버트 머튼 이후의 전통적인 제도주의적 과학사회학 접근들과 데이빗 블루어의 스트롱 프로그램, 해리 콜린스의 EPOR 등 지식사회학(SSK) 연구들, 브루노 라투어와 미셀 칼롱, 스티브 울가, 존 로 등이 주도한 ‘80년대 전기 ANT ['90년대 이후 이들은 각각 연구방향이 나뉘어져, 경제학에 ANT를 적용하려는 시도(Callon), 비실재론적 입장(Woolgar), 새로운 정치사회학적 해석의 시도(Latour), 존재론적 연구(Law) 등으로 나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연구방향을 ‘후기 ANT’라고 칭하고, 본 글에서는 이와 구분하기 위해, Salk 연구소에서 이루어진 실험실 연구와 조가비(scallops)와 어업, 파스퇴르와 미생물의 사례연구 등이 이루어진 시기를 ‘전기 ANT’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과학기술 혁신연구, 페미니스트 과학연구, 최근 등장한 사회세계이론(SWT) 등이 대표적인 고층 종파에 속한다. 그 밖에 ‘90년대 이후 두드러지는 각종 인식론적 연구들(epistemological researches)과 2000년 이후 최근 등장하고 있는 존재론적 접근들(ontological approaches), 기술철학자 돈 아이디(Don Ihde) 등이 주도하는 현상학(phenomenology)과 STS의 접합 시도, 후기 ANT에서 이루어지는 브루노 라투어(Bruno Latour)의 과학-사회-정치 중합체(assemblage)에 대한 재해석의 노력 등도 고층 종파 STS의 사례들이다.
풀러가 구분한 두 번째 영역은 좀 더 현실 참여적이다. 이를 풀러는 ‘저층 종파(low church)’라고 부른다. 저층 종파는 사회적 참여와 실천을 중시하는 움직임으로, 시민운동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거나 과학기술의 민주화, 지식의 보편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의 소거 노력, 인간제놈프로젝트(HGP) 이후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의 구분이 모호해진 생명공학기술(BT)의 특정 연구분야(가령 인간복제 문제, 유전자조합을 통한 키메라의 생산 가능성 등)에서 그 부작용과 위험성을 경고하고 예방하려는 움직임 등으로 나타난다. 그밖에도 저층 종파의 대표적인 사례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과학[기술]의 공중(公衆) 이해(PUS[T], 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and Technology]), 연구가 실용화되기 이전에 '항상 이미'(always already) 직접적으로 인간사회와 자연계에 모두 영향을 미치게 될 나노기술(NT)을 중심으로 강조되는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대중의 이해(PUR, Public Understanding of Research), 지속가능한 기술(sustainable technology) 등 환경문제에 대한 STS적 담론들, 모호해진 전문성의 경계에 대한 전문가-일반인 연구들(expertise-lay theories), 지역사회와 과학기술을 연계하는 과학상점 운동(science shop movement), 글로벌화된 의료기술산업의 문제점에 대한 해석, 핵발전과 위험사회(risk society)에 관한 연구와 그 실천적 영역 등은 모두 STS의 저층종파에 속한다.
한국에서의 STS
최근 들어 국내에서 ‘수행인문학(performative humanities)'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다. 이 용어의 의미가 STS학계에서 정확히 정의된 바는 없지만, ‘수행성(performativity)’의 개념은 오스틴의 발화이론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스틴에 의하면, 어떤 종류의 문장은 그 자체 수행성을 갖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대상의 묘사 및 설명을 넘어서 실제 사회와 행위자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력(agency)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이를 발전시켜 리요타르는 1970년대에 이미 그의 저서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수행적 지식(performative knowledge)에 대해 논의를 전개하였다. 리요타르는 “앞으로 수행성(performativity)이 고등교육을 지배할 것”이라고 말하였고, 이는 실질적으로 사회에서의 수행적 능력을 고양시키는 분야가 교육을 지배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즉, 진리나 윤리 등을 다루는 역사, 철학, 순수수학 등의 과목보다는 실제 유용한 지식을 전수하는 컴퓨터공학이나 의대/법대 등의 분야가 각광을 받을 것이며, 그렇지 못한 지식은 상대적으로 위축될 가능성이 있음을 내다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예상이 현실화되어 지난 세기 말부터 한국에서는 이공계 기초과학 분야의 위기와 함께 ‘인문학의 위기’가 제기되었고, 그 해결책의 하나로 ‘수행인문학’이 강조되었다.
그런데 바로 STS는 이러한 학문적 분석 및 해석적인 요소와 실행적이고 수행적인 측면을 동시에 겸비한 학문이다. 이론적 분석과 설명, 즉 ‘de-scription’을 중시하는 고층종파가 있는 반면, 현실적 개입과 개선을 중시하는, 즉 pre-scription’을 중시하는 저층 종파가 함께 연구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최근 황우석 사태와 광우병 파동, 대운하 문제 등 과학기술지식의 수행적 능력과 이에 대한 사회에서의 밀접한 이해가 크게 요구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현재 IT 및 BT 일부 분야에서 그동안 선진국의 뒤를 추격하던 단계(catchup regime)에서 벗어나 이미 탈추격(post-catchup)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이는 아직 서구사회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과학기술과 연관된 현상(예. 개똥녀 사건과 온라인 프라이버시 문제, 오마이뉴스 등 새로운 미디어언론의 출현, 줄기세포연구와 관련된 이슈 등)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을 잘 정리하고 해석해서 (고층종파) 우리 사회가 바람직하게 나아갈 바를 제시해 줄 수 있는(저층종파) 분야가 곧 과학기술학(STS)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과학기술학에 대한 수요가 크게 요구됨을 뜻한다고 하겠다.
‘과사철’에서의 STS
현재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이하 ‘과사철’)에서는 그 명칭이 지시하듯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주요 학습 및 연구 분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과학사 및 STS 지도교수인 홍성욱 교수가 부임하신 이후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에 STS 전공이 신설되어, 상당수의 학생들이 STS 분야로 논문을 작성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과사철에서 STS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의 경우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데, 이들의 연구 주제를 개략해 보자면, 줄기세포 연구집단 등 과학자 사회의 개념과 형성과정, 펀딩(funding) 및 그랜트(grant)의 수여 구조, 전력선 통신(power-line communication, PLC)의 역사, 성형 의료기술을 통해 본 페미니스트적 STS 분석, 자기공명영상(MRI)과 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PET) 등 의료영상기술과 관련된 혁신 및 정책 연구, 최근 사회과학에서 각광받는 ‘몸’의 개념에 대한 후기구조주의 STS적 분석, 지구 온난화문제 등 기후변화에 대한 기술적 수정(technological fix)과 사회적 수정(social fix) 등 지속가능한 기술(sustainable technology)의 정책연구 등을 다루고 있다.
박사과정 STS전공에 재학중인 학생은, 세 개의 논문자격시험을 통과하면 ABD(all but dissertation, 학위논문만 제출하면 졸업이 가능한 상태)가 된다. STS분야의 경우 첫 번째 논문자격시험(이하 ‘논자시’)은 ‘과학사 통론’으로 시험을 치루게 된다. 본 과정에서는, 과학사 전공자의 경우 과학사 통론 1과 2, 그리고 과학철학 통론 1 혹은 2의 수강이 필수이며(총 3과목), 과학철학 전공자의 경우 과학철학 통론 1과 2, 그리고 과학사 통론 1 혹은 2의 수강이(총 3과목) 필수이다. STS 전공자들에게는 과학사 전공자와 동일하게 과학사 통론 1과 2, 그리고 과학철학 통론 1 혹은 2의 수강이 요구된다. 그리고 첫 번째 논자시는 과학사 통론(1과 2)을 대상으로 시행된다. 이는 본 과정에서 학습/연구되는 STS의 특성으로 과학사적인 성격에 충실한 STS가 중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과사철의 성격뿐만 아니라 학문의 계보를 보아도 이해가 가능한데, STS와 과학사회학은 사실 그 뿌리가 과학사적 연구에서 연원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논자시는 STS 전공시험이다. 이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본 과정 및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실시되는 STS 관련 강좌를 세 개 이상 수강하여야 한다. 세 번째 논자시는 세부전공시험으로, 이는 본인의 논문주제와 관련된 분야에서 실시된다.
아울러 본 과정에 입학하여 STS를 공부하고자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한 STS 학부 세미나가 정규적으로 개설되고 있다. 이에 대한 내용은 과학사 및 과학철학 분야에서 실시되는 ‘학부생 및 타대생 대상 세미나’에 대한 소개와 함께 매 학기 초 본 게시판을 통해 공지될 것이다. 또 서울대 학부 수업 중 “과학기술과 사회”등의 관련 강좌는 본 과정의 STS분과에서 개설하는데, 이 과목에서 학생들은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론적 배경과 구체적인 적용 사례 등을 배우게 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21세기 들어 고도로 과학기술화 되어가는, 그리하여 자연과 사회의 구분(nature/culture)이 점차 어려워지고, 과학이 추구하는 진리(fact)와 과학기술자들이 구성하는 인공물(artefact)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는 과학-기술-사회의 새로운 정체성과 상호 관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