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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

과학철학은 무엇인가?

과학이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인식적 활동이라면, 과학철학은 과학을 대상으로 하는 메타학문적 탐구이다. 철학이 세계에 관한 일반적이고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답하려는 시도라고 할 때, 과학철학은 철학의 한 분야로서 과학에 관한 근본적이고 일반적인 물음들, 예컨대 인식론적, 형이상학적, 윤리적 물음을 다룬다. 과학철학의 연구는 크게 과학 일반에 관심을 가지는 일반과학철학(General Philosophy of Science)과 개별 과학에서 제기되는 철학적 문제를 다루는 개별과학철학 (Philosophy of Special Sciences)으로 구분된다.

일반과학철학

과학철학의 연구는 주제, 내용, 방법에 있어서 매우 다양하다. 그러한 연구들을 “과학철학”으로 묶어주는 것은 과학의 토대, 방법, 함축에 대한 진지하고 우선적인 관심에 있다. 특히, 과학철학의 공통 관심은 “과학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인지”를 찾는 데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세분화된 물음들로 표현될 수 있다. 우리가 과학을 통해 세계에 관한 지식을 얻는다면, 어떻게 그런 지식 추구 활동은 성공적일 수 있는가? 근대 과학은 세계에 관한 다른 종류의 탐구 활동과는 어떻게 다른가? 도대체 과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과학철학자들은 다양한 주제를 탐구해왔다.

구획문제는 과학을 비과학과 구분해주는 특별한 점이 무엇인지 묻는다. 이는 과학의 고유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묻는 방법론과 흔히 연계되어 논의되는데, 만일 과학적 방법이 과학을 다른 분야와 구별해주는 요체라면, 과학의 고유한 방법을 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논리실증주의자는 검증의 방법을, 포퍼는 반증의 방법을 구획의 기준으로 제안한 바 있으나, 각각의 주장이 과학적인지 아닌지를 단일한 기준에 의해 판단할 수 없다는 비판에 직면하였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과학 이론의 본성과 구조를 밝히는 데도 관심을 가졌는데, 특히 직접 관찰될 수 없는 대상이나 과정을 포함하는 이론적 구조가 어떻게 경험적, 인식적 유의미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해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논리경험주의자들의 소위 "공인된 견해"에서 과학 이론은 진술들의 집합으로 간주되었으나, 이후 철학자들은 이론을 모형들의 집합으로 보는 소위 “의미론적 견해”를 대안으로 제시해왔다. 이론과 자료의 관계는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다. 예컨대 어떻게 새로운 가설이 제시되는지, 그리고 이론은 어떻게 경험적 자료를 통해 입증되는지에 관해 귀납주의와 가설연역주의 등이 논의되었고, 특히 입증의 문제는 방법론과 연관되어 폭넓게 논의되고 있다. 여러 과학 이론들이 맺는 관계도 철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논리실증주의자는 이론들이 맺는 바람직한 관계로서 환원을 통한 통합과 진보라는 이상을 제시했으나, 과연 통시적 혹은 공시적 형태의 환원이 과학의 실상을 잘 반영하는지는 논란거리가 되었다. 과학적 설명도 중요하게 다루어진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과학이 세계에 관한 설명을 제공해준다고 할 때 과학적 설명의 본성은 무엇인지, 법칙의 사용은 과학적 설명의 필수 요소인지, 설명은 예측과 동일한 형식을 공유하는지, 통계적 설명은 다른 설명과 어떻게 다른지, 인과를 해명하지 않고 설명에 관한 충분한 이론을 제시할 수 있는지 등이 주요 쟁점이었다.

과학적 실재론 논쟁은 위에서 언급된 여러 인식론적 쟁점들과 연관되어 있지만 형이상학적 성격을 띤다. 실재론이란 거칠게 말해, 성공적인 과학 이론이 세계에 관한 객관적으로 참인 그림을 제공하고, 과학의 목표는 그런 객관적 참을 획득하는 데 있으며, 과학자들은 참에 가깝다는 판단 아래 특정한 이론을 수용해 왔으며, 따라서 과학의 진보는 진리를 향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부 반실재론자들은 과학 이론이란 이론화 및 실험을 위한 도구에 불구하다고 주장하며, 경험적 구성론자는 우리가 합당하게 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결론은 과학 이론의 진리가 아니라 경험적 적합성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실재론 논쟁은 과학이 실재를 반영하는지 여부뿐 아니라, 과학의 목표, 과학 이론의 수용, 과학의 진보, 그리고 과학적 진리 등과 관련된 포괄적인 논쟁으로 많은 철학자들이 관심을 가져온 주제이다.

과학과 과학철학

과학 일반에 관심을 갖는 철학자들은 상이한 분과들 사이의 차이에 주목하기보다는, 합리적으로 지식을 축적하는 활동이라는 다소 이상화된 과학의 그림에 관심을 가진다. 물론 이러한 철학자들의 강조점은 실제로 실행되고 있는 현장의 과학과 다소 다를 수 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종종 과학철학이 과학 활동을 하는 데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묻곤 한다. 예컨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은 “새에게 조류학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과학철학도 과학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가 자신에 관한 지식을 이해할 능력이 없듯이, 과학자가 과학에 관한 메타적 지식을 이해할 능력이 없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우선, 과학자의 물음과 철학자의 물음이 다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학철학의 목표는 과학적 물음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에 관한 철학적 물음을 던지고 답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과학철학은 과학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인가? 1944년 과학철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현대물리학을 가르쳤던 로버트 손튼 교수는, 자신의 물리학 수업에 철학을 포함해야할지 아인슈타인에게 자문을 구했다. 아인슈타인은 당시 과학 교육의 근시안적 시각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요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숲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나무만 잔뜩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과학의 역사적, 철학적 배경을 알고 있으면 대부분의 과학자가 지닌 문제인 현세대의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 생각에 철학적 통찰이 가져다주는 편견으로부터의 자유야말로 진정한 진리탐구자를 단순한 장인이나 전문가와 구별해주는 표시이다.”

게다가, 과학철학의 가치는 과학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만으로는 결정되지 않는다. 과학철학은 넓은 의미에서 사회적 중요성도 지닌다. 과학이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과학의 한계는 무엇인지 등을 물음으로써 과학과 다른 학문 분야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류의 지식과 문화에 기여하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 과학철학은 교육이나 정책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창조과학을 과학 수업 시간에 가르칠지 말지 결정하려면 우선 그것이 과학인지를 따져보아야 하며, 이는 곧 구획 문제에 속한다.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증거기반의학이나 증거기반정책에 관한 여러 쟁점들은 증거에 관한 과학철학 연구들이 기여할 수 있는 또 다른 영역들이다.

개별과학철학

많은 과학철학자들은 개별 과학에서 제기되는 철학적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물리학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과학 분야이면서 동시에 가장 일반적이고 근본적인 수준에서 자연세계를 탐구하는 분야로 간주되기 때문에, 물리학에서 제기되는 여러 개념적 쟁점과 해석의 문제는 많은 철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20세기 초 현대 과학철학의 형성에 기여했던 비엔나 모임과 베를린 모임은 모두 현대 물리학의 발전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시간과 공간에 관한 철학적 담론에 큰 충격을 준 상대성 이론의 발전이 대표적이다. 시공간 철학에서는 4차원 시공간, 동시성의 상대성, 시간의 방향성, 기하학과 실제 세계, 그리고 실체론과 관계론의 논쟁 등이 흔히 토론된다. 양자역학 철학에서는 동역학에서 측정의 의미와 역할, 비국소성, 물리량의 실재성 등이 논의되며, 흔히 교과서적 해석으로 간주되는 코펜하겐 해석 이외에도 다세계 해석, 양상 해석, 봄 역학, 결풀림 해석 등이 경쟁한다. 이외에도 통계역학, 양자마당, 양자중력, 우주론 등으로 그 연구분야가 확장되고 있다.

생물학의 철학은 20세기 후반부터 가장 활발히 연구되어온 분야 가운데 하나이다. 진화론뿐 아니라 분자생물학과 발생생물학도 철학적 성찰의 대상이 되고 있고 면역학까지 논의가 확장되고 있다. 진화론에 관해서는 진화의 주된 메커니즘인 자연선택의 단위가 무엇인지, 이타적으로 보이는 동물들의 행위를 진화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적응주의 프로그램은 얼마나 강력한지 등이 논의되고 있다. 흔히 진화의 단위로 간주되는 생물종에 관해 상이한 분류체계들이 상이한 정의를 제시하는 상황에서, 생물종에 관한 올바른 정의가 존재하는지, 생물종이 존재론적으로 개체인지 자연종인지 등이 논의되고 있다. 고전유전학과 분자유전학 사이의 관계는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으며, 이 분야의 연구들은 유전학의 역사에 관한 탐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이루어진다. 근래에는 진화론(-유전학)과 발생학의 새로운 종합, 문화의 진화,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의 개념적 쟁점 등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그 외에도 인지과학 및 심리학의 철학, 인공지능의 철학, 사회과학의 철학, 의학의 철학 등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21세기 과학철학의 방향

과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전문화, 다양화되는 만큼 과학철학의 영역도 확장되고 있다. 과학철학자들은 발달하는 과학의 실상과 밀착하여 철학적 탐구를 시도해왔다. 한 가지 방향은 발전하는 개별과학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개념적 쟁점들에 천착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향은 일반과학철학 자체의 새로운 시도이다. 이미 1960년대 쿤이나 파이어아벤트를 비롯한 일군의 과학철학자들은 논리경험주의나 포퍼의 반증주의 같은 당대의 과학철학이 과학의 실제 역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소위 “역사적 전환”을 감행한 바 있다. 그럼에도 주류 과학철학계는 여전히 과학 이론의 구조 및 이론-세계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근래, 역사주의 및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은 일부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적 실행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철학적 탐구를 시도하고 있다. 이미 20세기 말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실험에 대한 인식론적 분석도 이런 흐름을 선도했다고 볼 수 있다. 실험의 역할은 단지 이론을 평가하고 정당화하는 데 국한되지 않기에, 실험의 인식론은 과학철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셈이다. 2000년대 이후 과학철학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메커니즘에 관한 논의나, 이와 연계하여 논의되고 있는 과학에서 모형이나 시뮬레이션의 사용에 관한 연구들도 여러 분야의 과학자들이 (특히, 생물학자들이) 법칙보다는 메커니즘이나 모형을 더 많이 언급하며 사용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과학적 실행에 관한 분석은 이론이나 법칙이 과학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무시하지 않지만, 그것들이 과학자들에 의해 실제로 사용되는 과정에 더 관심을 가진다. 한편, 자연주의 전통에서 과학적 인지를 일상적 인지 활동의 연속성 상에서 파악하면서, 인지과학을 통해 전통적인 과학철학의 문제들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소위 인지과학적 접근도 과학철학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과학 활동에서 가치가 수행하는 역할을 조명했던 연구들이나, 이론의 고안과 선택 등에서 성별의 역할에 주목했던 여성주의 인식론과 과학철학도 그 중요성이 커져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과학 일반에 관한 철학적 문제를 다루면서도 이것이 과학의 현실에 닿게 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철학의 실천지향성이 나타나는 또 다른 방식은 과학과 기술이 실제로 활용되는 현실세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새롭게 부상하는 기술의 윤리적, 사회적 함축을 다루는 다양한 연구분야들이 각광받고 있다. 예컨대, 신경윤리는 신경과학과 뇌공학의 윤리적, 사회적, 법적 쟁점들을 다루는 동시에 도덕적 의사결정의 신경적 기반을 다루기도 한다.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등에 관해서는 로봇윤리, 정보윤리 등의 분야가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이들 분야에서는 과학철학이 기술철학 및 응용윤리학과 중첩되어 있다. 우리는 이 분야를 응용과학철학으로 부를 수 있다.

이제는 제법 성숙한 하나의 분과학문으로서 과학철학은 더 확장되고 심화되고 있다. 한편으로, 수학이나 논리학에서 가져온 더 날카로운 형식적 도구들을 통해 과학적 지식과 추론을 분석해내는 형식인식론이 발전하고 있고, 방법론의 심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과학의 인식론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 대담하게 전통 형이상학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려는 과학적 형이상학, 혹은 과학의 형이상학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끝으로, 과학철학 분야의 성숙을 보여주는 한 가지 징표는 “과학철학의 역사”(HOPOS) 분야의 발전이다. 과학철학은 이제 자신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이를 과학사 및 철학사와 연결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