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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학위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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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 산과학에서 산전 초음파 진단의 보급과 임신 경험의 변화

저자 조희수 연도 2021 지도교수 임종태

국문초록

이 논문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산부인과에 초음파 진단기가 점차 보급되고, 산전 초음파 진단이 임신한 여성이라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절차로 자리 잡는 과정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다음의 두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한국 의사와 여성은 왜 초음파 기술을 선택하였으며, 초음파 진단은 어떻게 한국의 산과학에 그토록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는가? 초음파 진단은 한국의 산과학과 여성의 임신 경험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
지금까지 산과학에서의 초음파 기술에 주목한 연구들은 초음파 기술과 여성이 대립 관계에 놓여있다고 보았고, 산전 초음파 진단의 정례화는 여성이 의료기술과 의학지식의 권위에 종속된 결과로 해석해왔다. 이 논문에서는 기술과 여성의 대립 관계나 초음파 기술의 권위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기보다는, 의사와 여성을 초음파 기술의 소비자로 바라보고 이들이 어떠한 필요에 의해 초음파 기술을 사용하기로 선택했는지에 주목한다. 그들의 선택은 초음파 기술을 둘러싼 의료적・사회적・기술적 환경 때문인 동시에, 초음파 기술이 편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행위자들의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이 논문은 이렇게 선택된 초음파 기술의 보급이 한국 산과학의 의료 환경과 여성의 임신 경험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살펴본다. 1970년대까지 일부 대형병원에 국한되었던 초음파 진단기 도입이 여성의 임신을 관리함으로써 임신한 여성과 태아의 건강 위험을 낮추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중・소규모의 병원에서도 초음파 진단기 도입이 시작된 1980년대부터는 정례화된 산전 초음파 진단을 시행하고 의료 서비스의 ‘고객’인 임신부를 유치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이는 한국 산과학이 초음파 진단을 기반으로 재편되고, 한국 임신부들이 초음파 진단기를 통해 만들어진 ‘정상 임신’의 기준에 맞추어 빈번한 감시와 개입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다. 여성들이 초음파 진단을 선택하는 이유 역시 시기에 따라 달랐다. 초음파 진단이 보편화되기 이전인 1980년대 초에는 일부 여성들이 이를 태아 성감별의 도구로서 주목하였다면, 산전 초음파 진단이 정례화된 1990년대부터는 임신한 여성 대부분이 임신 과정의 당연한 절차 중 하나로서 이를 경험하고, 초음파로 임신 상태와 태아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고자 했다. 이 시기부터는 태아의 기형이 초음파를 비롯한 산전 진단을 통해 출산 전에 예측될 수 있고, 심지어는 ‘예방’할 수 있는 요소로 여겨졌는데, 기형아를 예측한다는 명목 아래 임신부들은 더 많은 진단을 받고 그 결과에 따른 결정을 내릴 책임을 부여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