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초록
본 논문은 1993년 열린 대전엑스포를 통해 1990년대 초반 한국의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기술적 상상의 특성을 그려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엑스포 주제가 전통 과학기술을 포함한 주제로 정해지고 전시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과학기술에 ‘한국적’ 정체성이 부여됐음을 보일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이 제안했던 엑스포는 산업 전시 중심으로, 경제적 성과를 거두는 것을 주 목적이었다. 계획 초기에 과학기술과 관련된 전시는 과학 기술처가 건설을 맡은 전시관에 국한됐는데, 이 전시관 주제 선정 연구에 참여한 과학사상가와 과학사학자들이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대안으로 한국의 전통 과학기술 전시를 제안하면서 엑스포의 전시 소재로 등장할 수 있었다.
전통 과학기술 전시는 엑스포를 둘러싼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엑스포 전체 주제로 확대됐다. 조직위원장의 사퇴와 조직위원회 지원법안의 계류로 인해 엑스포 개최 시기가 1993년으로 2년 연기됐고, 동시에 국제박람회기구(Bureau International des Expositions)의 승인을 추진하게 됐다. 이에 맞춰 조직위원회에서는 한국의 개발도상국적인 특징을 강조한 주제를 개발했고, 전통 과학기술을 재조명하자는 내용이 새로운 주제에 포함됐다. BIE는 개발도상국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주제를 변경할 것을 요구했고, 현대 과학기술의 대안으로의 전통 과학기술이 아니라, 둘 사이 조화를 통해 개발도상국의 성장을 이끌어낸다는 내용으로 주제 속 과학기술의 관계가 변화됐다.
확정된 주제가 전시로 구현될 때 전통 과학기술과 현대 과학기술의 조화 관계는 조직위원회에 의해 재해석된다. 전통 과학기술은 한국의 과거 성취로, 현대 과학기술은 한국이 오늘날 이뤄낸 성과로 구현됐다. 엑스포 회장은 오늘날의 과학기술적 성과를 총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소로, 정부관 전시의 전통 과학기술 유물은 한국의 현대 과학기술적 성과를 선 취한 근거로 소개됐다. 이처럼 대전엑스포의 전시로 구현된 과학기술에 대한 상상은 전통 과학기술과 현대 과학기술, 미래 과학기술 성장에 한국적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