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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 감지의 정치 :1991년 낙동강 페놀오염 사건과 한국 환경체제의 ‘과학적’ 재구성

저자 박상현 연도 2025 지도교수 임종태

초록

본 연구는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에서 이뤄진 정부, 전문가, 환경운동 단체, 시민들 사이의 정치적 경합과 그것이 1990년대 한국 환경체제의 변화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페놀 사건은 단순히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린 교훈적인 사건이 아니라, 환경오염의 서로 다른 의미와 문제인식이 충돌하고 그 결과 새로운 환경체제가 등장한 규범적 정치의 장소였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본 연구는 ‘오염 감지의 정치’에 주목한다. 오염 감지의 정치란 여러 오염 감지 방식 중 무엇을 신뢰할 것이며 그에 따라 어떤 문제인식, 해결책을 채택할 것인지를 두고 벌어지는 정치를 말한다. 이러한 접근은 환경오염 사건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역동적 과정이자, 그에 연관되는 사회적 질서와 규범이 창출되는 구조적 문제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1980년대 이후 한국의 수돗물 생산 체제는 상류 수원지의 개발, 그리고 수질측정 및 정수처리라는 환경공학적 해법을 토대로 수돗물의 수질만을 중시하고 전자산업 공단과 강에 상존하는 오염을 비가시화, 정당화했다. 그러나 강의 오염이 수돗물과 연결되면서 발생한 페놀 사건은 이 체제를 위기에 빠트렸고, 시민들의 저항은 수질오염을 둘러싼 정치의 장을 창출했다. 페놀 사건에서는 정부와 전문가들의 수질측정, 그리고 시민과 임신부 여성들의 몸 감각이라는 두 가지 다른 방식의 오염 감지가 작동했다. 측정은 오염을 지도 위의 수치로 환원했고 이는 오염도 관리라는 대책과 연결되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인식과 해결책을 경제성장을 침해하지 않는 정도로 환경을 관리해야 한다는 경제성장 중심 환경 담론과 결합했다. 이는 자동수질측정기 설치, 수질정보 전산화, 고도정수처리시설 건설 등 측정 중심 수질개선대책으로 구체화되었다. 반면 몸의 감각은 몸이 관계를 맺고 있는 지역과 주변 생태계의 악화로 오염을 규정했다. 특히 페놀피해임산부모임의 여성들은 환경과 몸, 태아 사이의 관계 안에서 오염을 이해하고 그에 대응했다. 그러나 환경분쟁조정과 재판 과정에서 정부와 전문가들은 몸의 감각에 근거한 주장을 외면하고 측정된 오염도와 과학 지식을 더욱 신뢰했다. 환경운동 세력은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비판하고 생태주의적 담론을 확산시키고자 했으나, 이를 위해 시민들이 느낀 몸의 감각에 집중하기보다 더 객관적인 측정을 요구하고 과학적인 수질오염대책을 요구하는 등 정부 및 전문가들의 측정 실천을 전유하려는 전략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페놀 사건 이후의 한국 환경체제 하에서 환경정책과 환경운동은 측정이라는 오염 감지 방식을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시민들과 임신부 여성들의 몸의 감각이 보여주었던 오염의 문제는 논의의 바깥으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