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록
미국의 청정대기법(Clean Air Act)는 1955년 최초 제정 이래, 여러 번의 개정을 통해 대기환경 분야의 핵심 법률로 자리했다. 본 논문은 1960년 대에 걸친 청정대기법의 변천을 살펴보며 일련의 관료-과학자 집단이 추구했던 대기환경관리체계가 어떻게 법제화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기존의 1960년대 대기오염정책에 관한 연구는 지역적 맥락을 관찰하거나 청정대기법의 연방 단위의 정책 변화에 집중되었다. 그 결과 1970년 청정대기법의 등장은 1960년대 말 환경주의의 발전에 따른 급작스러운 결과로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이는 대기 오염 문제에 있어서 연방의 역할 증대만 설명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본 연구는 환경-관리 국가로서 미국의 모습을 강조하는 최근의 환경사 연구 기조에 따라 1960년대 대기의 관리 방식이 어떻게 변화하는 지에 주목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연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당시 대기오염정책 당사자들의 활동을 추적한다. 대기환경규제를 담당했던 주 혹은 지역 정부의 대기오염 담당 부서의 관료들과 연방 산하의 대기오염 담당 부서 내 과학자들은 모두 대기오염통제협회(the Air Pollution Control Association; APCA)의 소속으로 활동하며 소통했다. 이 학회는 미국 대기오염문제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협회로서 정기적인 학술 활동을 주관했다. 당시 대기오염 분야의 과학자들은 관료로 부임하기도 했으며 관료에서 다시 연구자로 돌아가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관료-과학자 집단은 미 전역의 대기오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협력체로서 움직였다.
1959년 캘리포니아에서 최초로 대기환경기준을 도입한 이후, 존 골드스미스(John R. Goldsmith)는 미국 국내외에서 적극적으로 대기환경기준을 중심으로 한 대기환경정책 수립을 적극 주장했으며 관료-과학자 집단은 이에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 1963년 청정대기법 개정 이후 미 공중보건국(Public Health Service; PHS) 내 대기환경관리부서는 부서장 버논 맥켄지(Vernon G. Mackenzie)를 중심으로 대기를 자연자원으로서 관리하고자 하는 대기자원관리 접근방법을 통해 보다 넓은 차원의 적극적인 규제 방법을 추구했으며 이는 뉴욕, 시카고와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적용되었다. 이 방식은 오염원 통제에 있어서 경제적 고려 및 법적 책임 부담을 완화하는 데에 장점이 있었다. 관료-과학자 집단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대기오염 문제에 대한 기존 규제 논의의 틀을 바꾸려 했다.
한편, 관료-과학자 집단의 대기자원 개념에 기반한 규제 방식을 법제화한 인물은 상원 내 대기 및 수질 오염 소위원회를 이끌었던 에드먼드 뮈스키(Edmund S. Muskie)였다. 그는 PHS의 대기자원관리 접근방법을 적극 수용하고 관료-과학자들과 긴밀히 연계했다. 그로 인해 높아지는 환경에 대한 관심 속에서 이루어졌던 1967년 대기환경법 및 1970년 청정대기법 입안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1970년 청정대기법에서는 대기자원관리 관점에서의 대기환경관리체계가 구현될 수 있었다.
1970년 국가대기환경을 중심으로 한 청정대기법의 등장은 1960년대 말 환경주의 물결에 따른 갑작스러운 등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 밑바탕에는 1960년대에 걸쳐 이루어진 관료-과학자 집단의 연구와 뮈스키 소위원회의 정치활동이 존재했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과 자연의 생태학적 관계에 중점을 둔 새로운 환경주의의 출현을 1960년대 말 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사례로서 그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