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초록
야생동물은 사회에 속한 다른 동물 범주인 실험동물, 가축동물, 반려동물과 달리 인간 사회와 정치에서 동떨어진 자연에 속한 존재로, 인간과 관계가 잘 그려지지 않아 온 동물 범주이다. 본 연구는 다른 범주의 동물처럼 길들임의 과정으로 그 관계를 드러내기 힘든 야생동물을 인간 사회와 정치에 포함시켜 서술하려는 시도이다. 본 연구는 야생동물 중에서도 철새가 관련 이슈에서 그 개체수로 자주 언급되어 온 현상에 주목해 한국 사회와 정치에서 인간과 야생동물이 맺고 있는 특별한 관계의 양상을 서술하고자 했다. 철새는 한국에서 야생동물 보호 관리 제도가 등장한 초창기부터 국가 조사인 야생동물 개체수 조사의 대상으로 채택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는 에 의해 전국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그 현황이 파악되는 특별한 야생동물이다. 본 연구는 철새 그 자체보다는 철새를 인간 사회와 정치에 연루시키는 국가 센서스 조사인 의 형성, 실천, 결과를 중심 주제로 한국 사회에서 인간과 철새가 맺고 있는 관계의 양상을 드러내고자했다.
먼저 본 연구는 가 국가의 자연생태계와 그 일원인 철새 개체군을 통치 가능한 대상으로 삼는 통치 기술로 등장한 배경으로 법과 제도의 변화를 탐구했다. 한국에서 가장 뒤늦게 등장한 환경 정책 분야인 자연환경보전 정책은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 자연을 ‘자연생태계’로 정의하면서 제도화되었으며, 이와 함께 국가는 자연을 기초 생태 조사로 파악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 이를 위해 1990년대 자연환경조사가 정기 조사로 설치되었고, 는 그 중 한 종류로 계획되었다. 이후 는 통치 기술로서 철새라는 분류군뿐 아니라 철새가 서식지인 철새도래지도 통치 가능한 자연으로 포함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환경 정책의 과정에 비인간 생물종과 그 서식지인 자연을 포함시키는 새로운 변화였다.
이 변화에서 비인간 자연을 서술하기 위한 이론적 자원으로 본 연구는 비인간의 행위자성을 관계적 언어로 서술해 온 과학기술학의 물질-기호적(material-semiotics) 접근을 채택해 인간 너머의 조건(the more-than-human condition)에서 생명정치의 작동을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참고했다. 이에 따라 의 현장과 그 결과에서 비인간 철새의 행위자성을 두 가지로 포착했다. 하나는 센서스 조사가 실시되는 현장에서 조사원의 조사 행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철새의 행위자성이다. 본 연구는 센서스 조사의 현장을 참여 관찰하여 철새 조사가 야생 상태의 철새에 맞추어 진행되는 관계 맺지 않음의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실행임을 드러내고자했다. 두 번째로 철새의 행위자성은 조사가 기록된 문헌의 사회적 위치와 함께 읽을 수 있다. 의 조사 결과는 공식 보고서로 정리되어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학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철새의 현황을 대신하는 자료로 정책 결정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철새의 행위자성이 발휘되는 두 가지 양상은 인간 사회에서 철새의 행위자성이란 인간, 사물, 철새 간의 특정한 관계에 의해 발휘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본 연구는 철새가 에 연계된 동물로서, 한국에 등장한 서로 다른 생명정치 영역인 생물다양성 정치와 생물안보 정치의 작동에 연계되어 있음을 보였다. 먼저 는 철새를 전국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한 자연환경조사 중 하나로, 현장 생물학인 생태 기초 조사로 실행된다. 조사 결과인 개체수와 종수는 철새도래지의 보전과 개발을 결정하는 지표로 활용되고 있으며, 실제로 한국은 주요한 철새 서식지로 파악된 농경지를 생물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생태계로 관리하고 있다. 최근 는 새롭게 등장한 생명정치인 생물안보 레짐에 연관되기 시작했다. 이제 철새는 인구와 가금류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바이러스의 이동을 가시화하는 모니터링 장치로 관여하기 시작했다. 는 2014년부터 철새경보시스템으로 확장해 실시되고 있으며, 철새의 현황은 차단방역의 조치를 시작하도록 경보를 울리는 신호로 읽히고 있다.
본 연구에서 탐구한 인간 너머의 조건에서 재해석한 생명정치란 비인간 철새에 ‘대한’ 생명정치이기보다는 비인간 철새의 현황에 ‘의존하는’ 생명정치를 의미한다. 비인간 철새는 자연생태계, 생물다양성, 인구, 가금류와 같은 생명을 파악하고 개입하는 과정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 철새의 현황으로부터 읽어낸 신호로부터 작동하는 생명정치의 핵심에는 가 있다. 철새가 지속적으로 인간 사회의 정치에 지속적으로 연관될 수 있었던 것은 가 조사 대상인 비인간 동물이 존재하는 현장을 조사의 장소로 삼는 현장 생물학으로 실시되는 조사이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겨울철 한국에 도래하는 철새 무리가 인간 사회와 동떨어진 경이로운 자연이나, 보호해야 하는 취약한 자연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늘을 수놓는 철새 무리는 현장 조사원과 결과 보고서의 독자인 정책 기관과 연계되어 자연을 평가하기 위한 지표로, 혹은 바이러스가 얼마나 가까이 왔는가를 감지해 위험을 알리는 경보로 읽혀 정책 대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인간 철새의 신호를 파악하고, 이를 일련의 정책으로 대응하는 인간 너머의 조건에서 실행되는 생명정치는 인간의 정치가 다른 존재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면서도 그 신호를 잘 포착하고 잘 대응하는 일은 인위적인 노력과 제도적인 뒷받침에 의해 가능하다는 점도 보여준다. 철새의 도래가 어떤 종류의 신호로 읽히는 일은 어디까지나 철새 센서스 조사와 같이 세심하게 고안된 조사 실천에 의해 가능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인간인 철새의 신호를 읽고 그에 대응하는 일은 인간이 아닌 존재에 응답해야 하기에 다른 방식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적극적인 사회적 지원과 개입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