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초록
이 논문은 조선 후기 산학算學의 특징으로 꼽히는 천원술天元術 및 천원술을 둘러싼 산목算木 계산법의 변화를 연구했다. 그러나 천원술을 현대 수학의 용어로 설명하며 그것이 처음 발명된 후 계속 이어지는 형식의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다른 인물들이 활동한 시기나 신분 계층,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 ‘천원술’이란 산술을 서로 다르게 재해석하고 발전시키는 것에 집중했다. 이 논문에서는 18세기에 주로 활동한 산원 홍정하洪正夏(1684-?), 17세기 후 반에서 18세기 중반의 유학자 박율朴繘(1621-?), 황윤석黃胤錫(1729-1791), 19세기의 유학자 남병길南秉吉(1820-1869), 19세기의 산원이자 관상감원 이 상혁李尙爀(1810-?)이란 다섯 학자들이 저술한 산서를 분석하되 특히 이들이 산목이란 계산 도구를 사용하는 태도와 천원술을 이해하는 방식을 관련지어 설명하고자 했다.
1부의 1장, 2장에서는 산목 계산에 익숙하지 않은 현대 독자들을 위 해 간단히 산목 계산법의 알고리즘 및 그 특징을 설명했으며, 실제 물리적 산목을 들고 계산할 경우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음을 주장했다. 한 흐름은, 단순곱셈과 단순나눗셈의 종류가 많아지면서 산목을 움직이는 공간을 줄이고 속도를 높이는 방향의 발전으로, 여러 가지의 가결을 외워야하는 부담이 있었다. 또 다른 흐름은, 단순나눗셈 중 상제라는 한 나눗셈에서 개방법으로, 그리고 증승개방법과 천원술이 발전하는 흐름으로 명확한 선후 관계를 특정할 수 없지만 대체로 비슷한 명칭과 비슷한 알고리즘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같은 흐름에 있다고 판단했다.
3장에서 다루는 산원 홍정하는 실제 산목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방향 으로 천원술을 발전시켰다. 그러므로 그의 천원술에는 물리적 산목으로 직접 계 산을 실행하면서 얻을 수 있는 알고리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천원술은 개방법의 하위 산술로 여겨졌을 뿐이었다. 반면 4장에 등장하는 유학자 박율과 황윤석은 천원술을 최분이라는 다른 셈법에까지 적극적으로 확장하면서 천원을, 오늘날 용어를 빌리자면 하나의 미지수로 취급하면서 계산의 시간적, 공간적 시작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천원술을 수행하면서 등장하는 각종 계수 들의 관계를 시각적 명징성을 지니도록 표현하는 데에 주력했었다.
18세기 후반 이후 점점 천문역법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에게 필산이 중요한 계산 도구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19세기의 유학자 남병길과 산원이면서 관상감원이었던 이상혁은 모두 산목뿐만 아니라 필산에도 정통한 학자들로 가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산목 계산이 필산으로 대체되는 이 시 기에 앞선 산목 계산의 두 발전 흐름과 관련하여 각각 다른 양상을 보였다. 우선 첫 번째 흐름과 관련하여, 산목 계산에서 보였던 단순곱셈, 단순나눗셈의 다 양성은 상실되고 필산에서는 다만 하나의 방법씩으로 고착화되었다. 두 번째 흐 름과 관련하여, 나눗셈과 개방은 필산에서의 나눗셈과 개방으로 비교적 쉽게 대 체되었으며, 더 이상 비슷한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천원술은 필산의 셈법으로 쉽게 대체되지 않았는데, 필산에 있는 ‘차근방법’이란 셈법과 같다거나 다르다는 것을 학자들 간에 길게 논의를 벌여야 할 정도였다.
이런 배경에서 남병길은 우선 천원술과 차근방법이 같다는 주장을 하는 산서를 출간했다. 그리고 다른 산서에서 천원술을 설명하면서, 차근방법에 서의 예를 충실하게 주석으로 덧붙이면서 차근방법을 이용하여 천원술을 이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상혁 역시 차근방법에 능숙했지만, 천원술에서 찾을 수 있는 정부 개념을 중심으로 산서를 저술하면서, 천원술이 차근방법보다 우수하 며, 천원술에서 착안한 정부 개념을 다른 셈법에까지 확장하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남병길과 이상혁의 이런 모습은 계산 도구의 관점에서 분석한다면, 필 산이 지배적인 시대에 다시 천원술을 부각시키려 공통적으로 노력했으며, 그러나 방법에서 미묘한 다른 차이를 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홍정하, 박율과 황윤석, 남병길, 이상혁의 천원술은 현대 수학 용어로만 풀이한다면 모두 동일한 셈법처럼 보이지만 기실 각자 나름의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는 셈법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