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박사학위 논문

> 연구 > 박사학위 논문

다른 아이’의 구성: 한국의 자폐증 감지, 진단, 치료의 네트워크

저자 장하원 연도 2020 지도교수 홍성욱

초록


한국에서 잘 진단되지 않던 자폐증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점점 더 흔한 장애이자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대상이 되어왔다. 최근 십수 년에 걸쳐 자폐증으로 진단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자폐증과 같은 발달장애를 다루는 학회와 연구자 집단, 치료 기관들이 생겨나고 자폐증을 지닌 당사자나 가족이 주축이 된 온, 오프라인 커뮤니티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 곳곳에서 느껴지고 말해지고 관리되고 있는 자폐증이라는 실체는 그리 자명하지 않다. 특히, 아동이 어릴수록 자폐증은 훨씬 모호하고 양가적으로 존재하는데, 이들 아동들은 자폐증이라는 확정적인 범주로 묶이기보다는, 일반 아동과 무언가가 '다른 아이'로 느껴지고 말해지고 돌보아진다. 즉, 아동에게서 자폐증은 장애 자체가 아니라 장애의 위험으로 감지되며,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라 만들어지고 있는 상태로 다루어지고, 확고한 진단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기대되고 관리된다. 한국에서 자폐증은 하나의 공고한 대상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실행 가운데 만들어지고 있는 어떤 것이다. 본 논문은 이렇게 격렬히 만들어지면서도 유연한 실체인 자폐증의 존재 양식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자폐증에 관한 각종 과학 분과의 연구들을 분석하는 한편, 아동의 발달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와 부모, 치료사에 대한 심층 인터뷰와 발달장애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참여관찰에 기반하여 다-현장 민족지를 수행하였다. 또한, 선행 연구들에서 아동에게 내재한 본질적인 '차이'를 상정한 채 그러한 차이를 자폐증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에 주목한 것과 달리, 그러한 차이는 그것에 대한 감각, 지식, 도구, 감정, 그리고 책임의 연합과 함께 만들어지는 결과라고 보았다. 이렇게 자폐증은 특정한 장소와 상황에서 그것이 실행될 때 행위하는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다중적으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자폐증의 네트워크들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우선, 자폐증에 관한 지식과 정보, 도구로 구성되는데, 이는 주로 자폐증을 다루는 과학적 연구들에서 만들어진다. 자폐증의 진단과 선별을 앞당기기 위한 연구들 속에서 어린 아동의 자폐증에 관한 언어와 도구들이 개발되고 있으며, 국제적인 협력에 기반한 역학 연구들에서는 세계 곳곳에 자폐증 진단 전문가와 진단 도구들, 그리고 새로운 자폐증 인구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자폐증에 관한 새로운 치료 방식들이 개발되고 그 효과와 한계에 관한 정보 또한 계속해서 갱신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자폐증은 생물학적인 질환이지만 생물학적으로 진단하거나 치료할 수 없는 장애로 간주되며, 이러한 간극을 원동력으로 자폐증을 가능한 빨리 식별하여 효율적으로 개입하기 위한 지식과 도구가 활발히 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자폐증에 관한 정보와 도구들을 매개로, 전문가와 부모, 치료사의 감각과 자폐증이 상호 의존적으로 만들어진다. 자폐증의 위험 신호는 아이의 특정한 행동들을 차이로 감지해내는 민감한 엄마와 함께 존재하며, 이러한 미묘한 차이는 다른 사람들의 감각과 중첩되는 가운데 보다 확고한 자폐증의 징후로 거듭난다. 이러한 징후를 지닌 아동이 자폐증으로 진단되기 위해서는 진단 도구와 임상적 전문성으로 무장한 진단 전문가의 감각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아동이 맺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사회성'을 감지한 결과들이 수렴되지 않으면 자폐증이라는 진단명은 유지될 수 없다. 또한, 자폐증이라는 범주로 묶인 아동들은 치료의 실행 속에서 분산되는데, 다양한 치료들에 관한 각종 정보와 증거들의 다양한 연합들 속에서 서로 다른 자폐증들로 관리된다. 이에 더해, 자폐증의 네트워크들에는 '다른 아이'를 둘러싼 다양한 감정들과 책임들 또한 연합되어 있다. 자폐증은 진단되기 전부터 감지되어야 하는 것으로, 어린 아동에게서 미묘한 차이를 감각해내는 능력을 함양할 책임을 수반하는 대상이다. 또한, 자폐증의 진단은 진단 기준과 도구에 기반한 의학적 실행일 뿐 아니라 진료실에서의 사회적 관계들과 감정들을 조율하는 정서적 실행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자폐증이라는 진단명은 진료실 밖에서 이어지는 여러 관계들 속에서 재해석되고 때로는 폐기되는데, 이는 아동에 대한 부모의 기대를 유지함으로써 자폐증을 관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고 적극적으로 책임을 다하는 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구는 자폐증에 관한 '좋은' 돌봄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자폐증은 그것을 감지하고 명명하고 관리하는 지적, 정서적, 윤리적 실천들 가운데 존재하며, 따라서 자폐증을 돌본다는 것은 단지 특정한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자폐증의 집합체 전체, 즉 그것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의 관계를 살피고 더 나은 배열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본 논문은 자폐증의 네트워크를 기술하는 동시에 그것을 구성하는 하나의 행위자로서, 그만큼 자폐증은 다시 한 번 새롭게 행해질 수 있을 것이다.